a16z의 Joe Schmidt는 이 글에서 AI 시대의 엔터프라이즈 제품은 셀프서비스로 퍼지는 Product-Led Growth보다, 고객 현장에 들어가 시스템을 연결하고 워크플로우를 대신 세팅해주는 Services-Led Growth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초기 마진은 낮아지지만 고객의 데이터와 업무 흐름을 붙잡는 해자가 생기고, 그 최전선에 Forward Deployed Engineer가 있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최근 하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최근 AI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업무를 수행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방식뿐 아니라,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선택하고 활용하는 방식까지 바꿀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SaaS는 대체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한 뒤,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사용자는 그렇게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필요한 행동을 직접 수행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모니터링 SaaS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보여주면,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그 정보를 확인하고 장애의 원인을 추적하며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AI가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이러한 구조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애가 발생했을 때 사람이 모니터링 화면을 확인하고 원인을 찾는 대신, AI Agent가 관련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고 원인을 추론한 뒤 필요한 조치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용자는 단순히 정보를 확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수행한 판단과 행동을 감독하거나 예외적인 상황에 개입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니터링 SaaS의 가치도 지금과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다.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수집하고 보기 좋게 보여주는가보다,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얼마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실제 업무를 어디까지 수행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결국 소프트웨어의 중심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Enhans나 Braincrew 같은 회사에서 FDE가 수행하는 역할이 눈에 들어왔다. FDE는 고객의 업무를 직접 살펴보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요구사항 너머에 있는 문제를 찾아낸다. 그런 다음 기존 시스템과 데이터를 연결하고, AI Agent가 실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기존 SaaS가 제공하던 기능의 일부를 AI Agent가 흡수하거나 대체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모니터링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가능성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모니터링 데이터를 다루다 보면 어떤 정보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지, 장애 대응이 실제로 어떤 순서와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과,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점도 체감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커리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AI가 계속 발전한다는 전제에서 보면, 이미 정의된 문제를 주어진 기술로 구현하는 능력만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차별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구현 자체의 비용과 시간이 AI를 통해 계속 낮아진다면,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고 기능을 완성하는 능력은 점점 더 쉽게 대체되거나 평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실제 기업의 문제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고객이 처음부터 정확한 문제를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고객과 직접 대화하면서 그들이 실제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하고, 업무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지는지 이해한 뒤, 막연한 불편을 AI가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기술적 지식뿐 아니라 도메인에 대한 이해, 질문하는 능력,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능력이 함께 필요하다.

특히 비즈니스에서 가치를 만들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단순히 전달된 정보의 내용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말투와 표정, 대화의 분위기, 관계의 맥락,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처럼 명시적으로 데이터화하기 어려운 요소들도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AI와 대화하면서 더 많은 정보와 답을 얻을 수 있게 되더라도, 사람과 직접 소통하는 과정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맥락과 결론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고객이 말로 표현한 요구사항과 실제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 차이를 발견하는 일은 단순한 정보 처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능력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FDE는 단순히 AI Agent를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다. FDE는 사람과 기업의 현실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형태로 구체화하며, 실제 업무 환경에 적용될 수 있도록 구현하는 역할에 가깝다. 기술과 비즈니스, 그리고 고객의 현장을 연결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순수하게 시스템을 깊게 만드는 엔지니어보다 FDE라는 포지션이 AI 시대에 상대적으로 더 큰 해자를 가질 수 있다고 느낀다. 이는 시스템 설계나 구현 역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합될 때, FDE의 역할이 더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생각이 반드시 맞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AI가 사람 사이의 맥락과 관계까지 얼마나 깊이 이해하게 될지는 알 수 없고, 현재 FDE가 수행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 역시 앞으로 자동화될 수 있다. 고객과의 대화, 요구사항 분석, 시스템 연결, Agent 구축까지 AI가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특정 기술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만이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과 소통하며, 그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내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AI가 구현에 드는 비용을 계속 낮춘다면, 오히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사람과 조직의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의 상대적인 가치는 더 커질 수 있다. 내가 FDE라는 역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AI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시대에, 결국 중요한 사람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