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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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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3장까지 읽었다. 읽다 보니 다윈의 <종의 기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룰루 밀러는 7년 동안 유지하던 안정적인 생활을 스스로 무너뜨린 사람이다. 거기서 다시 나아갈 힘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헤매다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닿은 것 같다. 데이비드가 바늘을 들고 흩어진 혼돈 속을 계속 휘젓게 만든 동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책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룰루 밀러는 그 질문을 따라가면서 종의 기원을 끝내 받아들인 데이비드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건 전체 줄거리가 아니라 중간에 끼어드는 룰루 밀러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일곱 살 때 아빠에게 삶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아빠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답했다. 왜 아무 의미가 없는지 한참을 설명하고는, 그러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했다. 대신 그 아빠에게는 자신만의 도덕적 규율이 있었다. 이 대목에서 좀 띵했다.
전에 읽은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자꾸 겹쳐 떠오른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라는 극한에서 버티려고 자기합리화를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게 결국 로고테라피라는 학문으로까지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의미도 없다는 쪽이 띵할 정도로 와닿았다.
두 사람이 도착하는 자리는 사실 비슷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태도만큼은 내가 고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네가 좋을 대로 살아” 쪽에 더 마음이 갔다. 그쪽에는 의미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숙제가 붙어 있지 않아서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의미가 없는데 지킬 건 지킨다는 태도에 마음이 간다. “의미가 없으니 아무래도 좋다”가 아니라 “의미가 없어도 내가 정한 선은 넘지 않는다” 쪽이다. 내가 이런 태도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나니, 카뮈나 <시지프 신화> 같은 이야기를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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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을 보고 있다. 거의 다 읽어간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데이비드라는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였다. 처음에는 룰루가 왜 이 사람을 쫓게 되었는지, 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상당한 부분을 데이비드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데 쓴다.
룰루는 결국 데이비드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런 사람에게서 삶의 답을 찾으려고 했던 자신의 생각을 다시 돌아보는 걸까. 데이비드가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 역시 그 시대와 환경, 그리고 본인이 가진 기질이 섞여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룰루가 받아들이는 진화의 관점도 결국 생명은 주어진 환경과 조건 속에서 변화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그 사람의 선택에 책임을 물어야 할까.
물론 환경이 그 사람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 역시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영향을 받고, 그 안에서 자신의 선택을 하며 지금의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데이비드를 계속 따라가며 그의 잘못을 보여주는 부분이 이 책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이 궁금하다. 처음에 룰루가 데이비드를 찾아간 이유와, 지금까지 발견한 데이비드의 모습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가지고 결국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지, 그리고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이 모든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하다. 거의 다 읽었는데도 아직 책이 어디로 갈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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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자연을, 우주를 인간이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데에는 결국 인간의 잣대와 주관이 들어간다. 물론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능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을 이해하고 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엄청나게 강력한 능력이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분류에 권위가 생기고, 거기에 우열까지 붙이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데이비드는 물고기를 분류하던 것처럼 인간에게도 등급을 매기기 시작했고, 그가 힘을 실었던 우생학은 실제 사람들을 강제로 불임시키는 정책의 토대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다.
11장까지 읽을 때는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책의 상당 부분이 마치 데이비드의 전기처럼 느껴졌고, 뒤로 갈수록 이 사람이 얼마나 잘못된 사람이었는지를 계속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데이비드가 나쁜 사람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읽고 나니 왜 데이비드를 그렇게 오래 따라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데이비드는 한 사람이 자신이 만든 분류에 확신을 가지고, 거기에 과학적 권위와 사회적인 힘까지 얻게 되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였던 것 같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질서를 어느 순간 세상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질서라고 믿어버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단어를 조심해서 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꽤 와닿았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단순히 어떤 것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어떤 단어로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을 바라보는 틀이 만들어지고, 그 단어가 반복되다 보면 마치 그게 그 사람의 본질인 것처럼 굳어질 수도 있다.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도 누군가를 내가 만든 하나의 틀 안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닐지 조금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계속 나왔던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마지막에야 같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우주 어딘가에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에 의미를 담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이 처음에는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든다. 원래부터 정해진 의미가 없다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면 되는 것 아닐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